[이전 글 : 인공지능(AI) 발전과 러다이트 운동 ①]
Ⅰ. 인공지능 기술 혁신과 인간의 대체 가능성
어느날 AI가 그린 그림이라는 제목의 그림들이 인터넷에 돌아다녔다. 처음에는 AI가 그린 그림은 어딘가 부족해 보였다. 손가락이 기형적이거나 발의 위치와 개수, 어깨의 높이 등이 어색한 그림들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그림들이 인터넷에 나타나고 불과 3개월이 흐른 현재 어색하지 않은 완벽한 그림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필자 역시 과거 만화가가 꿈이였던 시절이 있었고 분명 이 정도 수준의 그림을 그리기까지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함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여 더 충격적이였다. 이 기술이 상용화된 현 시점에서 가장 불안한 사람들은 현직 일러스트레이터 등 그림을 생업으로 하고 있거나 하려는 사람들일 것이다. 자신보다 압도적인 속도와 정확성, 그리고 창의성까지 겸하고 있는 AI의 그림을 보고 있자니 착잡한 심정일 것 같다.
※ 실제로 '백야극광'이라는 게임에서 AI를 이용해 상업용 일러스트를 제작한 사례가 있음.
한참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이 있었던 2016년 한국고용정보원은 작가, 화가, 조각가, 만화가, 애니메이터 등 창의력이 필요한 직무는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적다고 발표하였으나, 현재 인공지능이 그린 그림과 작곡한 음악 그리고 대본 등이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는 기사가 연이어 보도되고 있다. 인공지능 화가가 그린 초상화가 크리스티 경매에서 높은 가격에 낙찰되었고 쥬크덱(Juke Deck)이란 벤처기업이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만든 노래에 저작권까지 부여되었다는 사실은 인간 스스로가 인공지능의 창의성을 널리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인공지능은 예술 분야뿐만 아니라 전문 서비스에서도 활약하고 있다. 부동산 업무를 담당하는 로빈(LAWBIN)은 매물의 주소, 거래의 유형과 금액 등이 입력되면 스스로 위험성 정도를 판단하여 권리분석 보고서를 작성해준다. 인공지능 변호사인 로스(ROSS)는 파산법 분야를 중심으로 법률 자문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한편 인종 차별 이슈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구속적부심사 인공지능인 컴파스(COMPAS)는 2017년 6월 위스콘신 주 대법원에서 그 유용성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AI의 범용성은 상당히 넓다. 그렇기에 이 글을 작성하는 필자와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도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다. 필자는 오랜기간 동안 쌓아온 전문성이 더 이상 노동시장에서 거래되기 어려워지는 시대가 생각보다 빨리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MIT 경제학자 오터(David H. Autor)는 기술변화와 숙련 수준에 관한 경험적 연구를 통해 기계는 규격화된 업무(Routine task)는 손 쉽게 수행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업무에는 무력하다는 사실을 발표하였고, 이후 오터는 에이스모글루(Daron Acemoglu)와 실증 연구를 진행하여 중간 임금 노동자가 수행하는 노동에 규격화된 업무가 많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결국, 대다수의 중산층은 이러한 기술혁신의 여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현 시점에서 인공지능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일련의 현상들에 대해 어떻게 예측하고 대비하여야 할까?
Ⅱ. 인공지능 기술의 여파와 미래 노동 환경
앞서 소개한 러다이트 운동을 통해 인공지능이 가져올 영향과 이에 대항하는 이해관계자들의 저항 운동을 예상해볼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우선, 인공지능의 도입으로 대부분의 중산층이 담당하고 있는 직무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예측해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수행하는 직무 중 비싸고 어려운 업무들은 AI에게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된다. 로봇공학과 인공지능 전문가인 모라벡(Hans Moravec)은 1988년 발간한 『마음의 아이들(Mind Children)』에서 "기계는 사람이 어려워하는 일을 잘하는 반면 우리에게 쉬운 일은 잘 처리하지 못한다"고 작성하였다. 다시 말해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을 개는 일은 사람에게는 매우 쉬운 일이나 AI에게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모라벡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AI가 이불을 개지 못하는 것은 이렇게 비싸고 어려운 알고리즘 기술로 고작 이불따위를 개는 일에 남용하고 싶지 않아서이다.(그냥 사람을 쓰면 더 싸게 그 일을 해낼 수 있는데 뭐할러 AI를 만들겠는가?) 만약 구글의 탠서플로우(Tensorflow), 페이스북의 파이토치(Pytorch)보다 더욱 쉽고 싸게 AI를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이 개발된다면 이불을 자동으로 개주는 AI도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다.
다만 향후에도 AI를 쉽고 싼 값에, 그리고 효과적으로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이 개발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계속하여 기술하겠다. 사실 먼 곳에서 미래의 모습을 찾을 필요가 없다. 이미 아마존(Amazon)의 물류센터에서 우리가 직면한 미래를 엿볼 수 있다. 중산층이 수행하던 어렵고 비싼 업무를 AI가 대체하였다면 남아 있는 업무는 저임금·미숙련 노동 혹은 대체할 수 없을 정도의 고임금 노동일 것이다. 그러나 1810년대 영국의 상황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임금 직무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경향신문 기사 일부 발췌]
아마존 물류센터는 ‘현대판 팬옵티콘’의 결정체다. 작업공간엔 시간기록계 수십개가 있고, 작업은 초 단위로 감시되고 기록된다. 창고에서 물품이 스캔되듯이 작업자들도 최대한의 효율을 위해 스캔된다. 휴식시간은 10시간 교대근무 동안 15분에 불과하며 식사 시간은 30분에 무급이다. 로봇들이 알고리즘 춤사위를 펼치는 동안 작업자들은 ‘집품률’(할당된 시간 안에 선별·포장해야 하는 제품 수)을 맞추기 위해 종종거린다. 로봇이 핵심 노동력이며 인간은 로봇이 할 수 없는 자질구레한 허드렛일을 처리한다. 작업자들의 몸은 로봇 알고리즘의 연산 시스템에 맞춰 통제된다.
AI 시스템의 착취적 작업 형태는 ‘고스트 워크(그림자 노동)’로도 나타난다. 수천 시간 분량의 AI 훈련 데이터에 라벨을 붙이고 해로운 콘텐츠를 검토하는 등의 반복적 업무를 하는 ‘크라우드 노동’이다. 이들은 최저임금에 못미치는 돈을 받고 이미지에 태그를 붙이거나 알고리즘이 올바른 결과를 내놓는지 검증하며 AI 시스템을 빠르고 값싸게 개선한다. 아마존이 메커니컬 터크를 제작한 이유는 쇼핑몰 사이트에 중복 게시된 제품을 AI 시스템이 걸러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익명의 노동자들이 푼돈을 받고 AI를 대체했다. 제프 베이조스는 이를 ‘인공 인공지능’이라고 불렀다.
악화된 근로조건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사람은 생존권 확보를 위하여 국회를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 국내에서도 한국의 우버라 불리우던 "타다"가 택시업계의 반발과 관련 법규의 미비로 실패한 사례가 있다. 1810년대 영국의 러다이트 운동 역시 파괴 행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면직물 산업의 노동자 역시 1811년 4월 임금 인하 반대를 위한 청원을 의회에 제출하였고, 최저임금 보장을 위한 임금 규제와 보조금 지급을 요구한 청원서에 14만명이 서명하기까지 했다.
국회는 이 시점에서 양자택일의 극단적 선택을 강요받을 수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영자들을 대표하는 단체나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라도 AI기술의 진보를 오히려 지원 또는 촉진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양대노총·시민단체·AI 기술에 의해 피해를 받고 있는 노동자 집단은 매스컴을 통해 생존권 투쟁과 근로조건 저하에 반대하며 나선다. 자동화에 따른 해고 혹은 직무 전환배치 등 각종 노무이슈가 현실화되고 곧 법률적인 문제로 전화된다. 실제 러다이트 운동에서도 앞서 설명한 청원운동이 실패로 끝나자 엘리자베스-제임스 법에 의거해 임금 인하를 막아보려는 법률적인 시도가 있었다.
19세기 초 영국과 같이 한국의 경제 상황이 극단으로 치닫지 않은 이상, 위 법률적인 분쟁을 넘어 네이버와 같은 회사들의 자산이 불타거나 파괴되는 현상은 예상하기 어렵다. 오히려 입법부는 경영자와 노동자 모두의 이해관계에서 변증법적 토의를 통해 새로운 노동법 제정이라는 접점을 찾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제도적인 안정과 정착은 AI가 미칠 영향력에 대한 사전 연구와 준비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오랜 기간 동안 진통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Ⅲ. AI가 만드는 미래 노동환경에 대한 대응
필자가 예상하는 노동환경에서 정부의 역할은 상당히 중요하다. 우선, 지금이라도 인공지능, 노동법, 경영학, 노동철학, 노동조합 등 현장 실무자와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를 구성하여 연구를 시작하여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본 위원회는 인공지능이 불러올 긍정적인 영향과 부정적인 영향을 규명하되, 기술적 진보로 인한 기업의 이익과 일자리 상실로 인한 노동자들의 불이익을 함께 고려하여야 한다.
AI가 대체할 수 없는 직무는 없다는 전제 하에 연구를 수행하여야 할 것이며 교육 시스템 개편, 외국인 고용법 및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 개정 및 입법, 사회보장 시스템 내실화 등 전방위적인 제도 개편 연구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 연구된 제도 중 선제적으로 대응이 필요한 것들은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파일럿 테스트를 수행하고 그 결과에 따라 시행을 준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노동자는 기술혁신이라는 진앙(震央)에 의해 만들어진 쓰나미에 휩쓸리지 않도록 노동 주권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만의 암묵지(Tacit Knowledge) 형성하여야 한다. 암묵지는 오터가 정의한 바와 같이 규격화된 지식이 아니므로 인공지능이 학습하기 어렵다. 유명한 과학기술학자 콜린스(Harry M. Collins)는 TEA 레이저(Transversely Excited Atmospheric lasers)에 대한 사례연구를 수행하면서 재밌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TEA 레이저가 1970년에 학술지에 보고된 후 수많은 과학자집단이 이를 복제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문자로 표현된 지침서(written instruction)에만 의존한 집단은 작동 가능한 TEA 레이저를 만들 수 없었던 것에 반해 방문이나 전화를 통해 직접적으로 접촉한 과학자집단은 레이저를 성공적으로 제작할 수 있었다.
필자는 인공지능의 발전이 가져올 부정적인 면에 집중하긴 하였으나 기술 발전 자체를 반대하는 입장은 결코 아니다. 다만, 기술 발전에 의해서 발생 가능한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해보는 것은 기술 혁신의 안전한 연착륙을 위해서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인류 노동역사상 가장 최악의 기술혁신 시나리오인 "러다이트 운동"을 살펴보았다. 글이 길어져 2부작으로 작성하긴 하였는데 끝까지 읽어줘서 감사하다.
[참고문헌]
추현우.(2023) 오픈AI CEO "인공지능 두려워해야" 규제 필요성 강조, 디지털 투데이, https://www.digital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472203
김금수.(2013) 세계 노동 운동사 1, 후마니타스, 120-137
송성수.(2022).인공지능은 인간의 일자리를 얼마나 대체할 것인가 : 인공지능 시대의 기술과 노동에 관한 시론.코기토,(96),7-37.
이경영. (2022) 아마존에서 채용을 AI에 맡겼더니..."여성을 추천하지 않았다", 경향신문, https://m.khan.co.kr/culture/book/article/202212091647001#c2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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