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저성과자는 정말로 무능력한가?
A팀장 : 사람이 말이죠? D등급을 받으면 『사고구조』가 변해요. 그게 무슨 말인지 아세요?
필자 : 무슨 의미이시죠?
A팀장 : D등급을 받아버리는 순간 그 인원은 C등급을 못 벗어나요.. 왜냐하면 조직에서 D등급이라는 낙인을 찍는 순간 본인이 성과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게 아니라 조직이 자신을 잘못 판단하거나 미워한다고 생각하거든요
A팀장 :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부터 그 인원은 더 이상 성과 개선에 대한 의지와 동력을 상실해버려요. 그러다 보니 낮은 성과등급을 못 벗어납니다.
상기 인터뷰는 필자가 얼마 전 한 HR팀장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이다. 라즐로 복(Laszlo Bock)역시 그의 저서 『구글의 아침은 자유가 시작된다』에서 동일한 취지로 말한 바 있다. 해당 저서는 상당한 공을 들여 최고의 인재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채용"해놓고 그 중에 반드시 일정 비율만큼 저성과자로 "할당"하는 것이 과연 논리적으로 타당한 귀결인지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한다.
상기와 같이 '스택랭킹(Stack Ranking)', '랭크 앤드 양크(Rank and Yank)' 등으로 불리는 상대평가 시스템은 결국 매년 직원들을 평가해 구성원의 성과를 강제 서열화하고, 이에 따른 차별적 인사관리를 한다는 기조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는 구성원의 성과를 정확히 측정·비교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테일러식 합리주의에 경제학의 파레토 법칙, 통계학의 정규분포 아이디어가 덧힙혀져 있다.
언듯 보기에 과학적이고 타당할 것 같은 상대평가 시스템은 이에 적용받는 구성원들의 합의 내지 동의는 얻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성과평가가 객관적으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불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적자원 육성 및 관리 관련 비영리단체인 월드앳워크(WorldatWork)와 컨설팅업체인 십슨컨설팅(Sibson Consulting)은 인적자원 담당 고위 간부 75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그중 58퍼센트가 자기 회사의 성과 관리 체계를 평점 C 이하로 평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까지 국내 기업들의 성과평가 관행을 살펴보면 육아휴직을 다녀왔거나 진급이 멀었다는 이유로 중하위권 평가를 주는 암묵적인 관행이 존재하고, 승진 가능성이 높지 않는 단순 사무직 직원(혹은 신입직원)에게 하위 등급을 몰아주거나 반대로 승진이 임박한 사람에게 상위 등급을 몰아주는 경우도 있다. 황당한 것은 성과평가 시스템에 온정주의를 가미하여 3번 이상 최하등급을 받으면 재계약이 안 되거나 임금이 인상되지 않는 불이익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별 다른 성과개선이 없이도 최하등급 외의 성과등급을 부여하기도 한다.
※ 실제 우아한 형제들과 같은 IT 스타트업들은 최하등급을 연속해서 받을 경우 임금을 삭감하는 제도가 있음에도 한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다는 점에서 한국형 온정주의는 비단 공공기관과 대기업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결국, 타당하고 명백한 근거에 기반한 평가가 아닌 평가자의 주관적인 영역이 가미될 수 밖에 없는 기존 시스템으로부터 하위 등급을 부여받은 직원은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제대로 된 피드백도 없이 갑작스럽게 조직으로부터 저성과 통지를 받는다면 그 누가 조직의 평가시스템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저성과 평가등급을 받은 직원이 정말로 저성과자에 해당되는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Ⅱ. 상대평가의 인사관리적 문제점 : 조직효과성 및 효율성
잭 웰치가 주창한 상대평가 제도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던 마이크로소프트는 쇄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당시 MS 직원 간의 내부 경쟁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조직 내 협력은 커녕 서로의 성과를 방해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파벌 간의 정치판이 되어가고 있었다. 사티아 나델라가 CEO로 2014년 취임하였을 당시 나델라는 이를 두고 "MS는 병들었다"고 표현하였을 정도였다.
이와 같이 상대평가는 개인 간의 평가도 있지만 조직평가의 형태로서 부서 간의 상대평가도 이루어질 수 있다. 부서 간 상대평가가 잘 작동하지 않는다면 각 부서는 자기 부문의 KPI(Key Performance Indicators)에만 집중하여 단기적이고 근시안적인 성과에 매몰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특히 부서 간 상대평가는 사일로 효과(Silo Effect)를 조장하거나 강화함으로서 다른 부서와 소통하지 않고 자기 부서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다.
※ 실제 국내 일부 대기업 사례에서와 같이 조직평가 결과에 따라 구성원 개인에게 부여되는 성과평가등급의 수를 제한함으로서 낮은 조직평가를 받은 조직에 소속된 인원은 그 조직 내에서 높은 성과를 달성하더라도 최상위 등급을 부여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관리행태가 부서 간 상대평가의 부정적인 면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상대평가는 조직적 차원뿐만 아니라 개인의 신경과학적 차원에서도 높은 긴장감과 위협감을 줄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을 "Brain hijack"이라고 명명하며, 데이비드 록(David Rock)은 SCARF 가설을 통해 인간의 두뇌가 상대평가에 대항하거나 도피하는 이유를 설명하고자 했다. 구체적으로 사람은 수치화되어 평가되거나 하나의 숫자로 다뤄지는 것에 대한 인격적 불편감을 느끼며(Status), 투입 노력 대비 평가결과가 확실치 않거나(Certainty) 평가지표에 대해 본인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을 경우(Autonomy) 상당한 스트레스로 받아들여진다. 그 외에 성과평가 결과가 보상과 연관되어 있으면 정치행위가 증가하는 동기로 작용(Relatedness)하고 평가 시스템이 공정성을 상실한 경우에는 조직 내 불신이 야기(Fairness)된다는 점에서 사람은 본능적으로 상대평가를 지양한다는 것이다.
As Korn Ferry’s Eichinger says, “Imagine getting a family together, lining all the kids up in a row, and telling them how they rank compared to each other.” Parents wouldn’t do it, because it would make most of the family members uncomfortable—including whoever was ranked at the top
- David Rock, Josh Davis and Beth Jones, 『Kill your performance ratings』, 2014
실제로 많은 기업에서 Quinn의 경쟁가치 모형(Competing Value Model)에 기반한 조직문화 진단 설문조사를 실시하면 성과를 추구하거나 강조하는 Market 문화가 압도적으로 높은 경우는 거의 없으며 구성원들의 협력과 따듯한 리더십을 지향하는 Clan 문화가 가장 높거나 두 번째로 많이 추구된다. 이는 구성원들이 상호 간의 경쟁보다는 팀 워크 내지 협력의 가치를 더 지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상대평가에 대한 본능적 거부와 불편함은 일응 타당해 보이며 위 A팀장이 말한 바와 같이 조직원 사고구조가 변하는 것 역시 수긍이 간다.
Ⅲ. 상대평가의 노무적 문제점 : 저성과자 퇴출의 정당성
최근 홈플러스에서 성과평가 결과 최하위 등급을 받은 점장들의 직책을 해제하고 팀원 직급으로 전환 배치한 조치에 대하여 부당하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법원이 부당하다고 판단한 근거는 ⓐ팀원으로의 전환배치가 단순히 인력의 효율적 재배치 차원을 넘어 사직을 종용하기 위한 압박수단으로 활용된 정황이 보이고, ⓑ저성과자라고 판단한 2018년도 성과평가 결과가 합리성과 공정성이 담보된 기준에 의해 평가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구글의 라즐로 복은 조직 내 부적응자 또는 지속적 저성과자는 무능력한 것이 아니라 현재 조직 또는 직무와 적합성이 떨어지는 것일 뿐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저성과자라는 사실을 덮고 그 직원과 함께 가는 것이 오히려 해당 직원에게는 좋지 못하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그러한 직원들의 경우 다른 회사로 이직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한국의 현실은 미국과는 다르다. 설령, 해당 직원이 엄격한 의미에서의 저성과자라고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노동관계 법령은 근로자의 해고를 두텁게 보호한다.
법원의 판례 역시 상대평가에 의한 인사고과의 신뢰성을 점점 의심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데, 대법원은 상대평가(하위 평가등급 해당자 수를 할당)에 의한 인사고과에 따라 사용기간 중에 있는 근로자를 해고하는 것을 무효라고 판단한 사례(대법원 2006. 2. 24. 2002다62432)가 있으며, 하급심에서도 최하위등급을 받았다는 점만으로 해당 근로자의 업무능력이 "객관적"으로 불량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보아 4회 연속 최하위 등급(10%)을 받은 근로자의 해고가 부당하다고 판단하였다.(서울행법 2006. 1. 27. 2005구합23879)
위 홈플러스 사례 역시 상대평가 형식으로 객관적인 정량평가가 아닌 정성평가로 이루어졌으며, 더 심각한 것은 그 정성평가를 하는 지역본부장들이 참조할 만한 구체적인 평가기준조차 마련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저성과자를 판별해내는 그 기준의 명확성과 타당성, 그리고 성과평가 절차의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인사관리적 측면은 고사하고 법률적으로도 수용될 수 없다는 것인데, 여기서 상대평가는 그러한 요건을 충족시키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Ⅳ. 성과평가에 대한 제언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상대평가로 인한 조직 내 부작용이 나타난다면 그것이 조직문화와 조직의 구성원들에게 상처 입히기 전에 절대평가의 방식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혹자는 대부분의 관리자급이 "좋은 게 좋은 거지"리는 형태로 절대평가를 운영하게 되면 사실상 잘한 사람과 못한 사람을 구별해내는 판별력이 희석 또는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지적은 일응 타당하다고 볼 수 있으나 그러한 문제는 "상시 평가체계"를 구동시키면 해소될 수 있다. 세계 최고의 헤지펀드인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는 이슈로그(Issue log)라고 해서 직원들의 실수를 기록해두는 시스템을 운영한다. 실수를 체계적으로 관리해 조직 전체가 배우려는 목적고 함께 그것을 근거로 평가하여 평가자의 주관적인 편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와 유사한 사례로 '어도비'의 체크인(Check-in) 시스템이 있다. 이러한 체크인 시스템은 HR부서의 간섭이나 역할이 없다는 것이 큰 특징이며, 연중 상시 성과평가와 피드백이 이루어진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직원은 기대목표를 본인의 부서장과 함께 설정하고 이에 대한 상시평가를 진행하는 것인데, 눈 여겨 봐야할 점은 MBO나 OKR에서의 목표 설정이 회사의 이익과 전략 중심으로 이루어 진다면 어도비의 체크인의 목표 설정은 그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의 경력욕구, 향후 계획 등을 중심으로 세워진다는 것이 큰 차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성과관리에서의 교훈은 목표를 설정 또는 부여하는 단계에서 조직 구성원들을 기업의 부품처럼 간주했는지 아니면 한 인격체로서 존중했는지가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하나의 분수령이 아니였나 생각해본다.
<참고문헌>
DBR, 성장 마인드셋·상시 피드백 중시하는 애자일이 포스트 성과주의의 중심 : https://dbr.donga.com/article/view/1201/article_no/8853/ac/search
DBR, 상대평가결과는 대부분 승복 안 해 :
https://dbr.donga.com/article/view/1201/article_no/8913/ac/search
열린뉴스통신, [곽병선 칼럼] 사일로를 벗어나야 한다. :
https://www.onews.tv/news/articleView.html?idxno=99859
strategy+business, Kill your performence ratings :
https://www.strategy-business.com/article/00275
한국노동법률, 점장을 팀원으로...법원 “사직 종용 위한 전보 조치는 부당” :
https://bit.ly/3LWy5fK
법무법인 지평, 저성과자 해고와 관련한 쟁점들 :
https://www.jipyong.com/origin/a/150907_LKS.pdf
브런치 , 문제는 피드백이야 : 어도비 체크인 :
https://brunch.co.kr/@agile-peopl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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