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조직 효과성을 감안하여 직급체계 설계
조직이 직급체계를 통해 구성원들로 하여금 어떻게 행동하길 원하는지 큰 그림을 "인사철학"에 담아 구현하였다면, 이제 그것을 더욱 효과적으로 조직 구성원들에게 스며들게 하기 위하여 인사담당자는 ⓐ직급의 개수, ⓑ직급의 체류연한, ⓒ직급과 호칭의 관련성, ⓓ직군별 별도 직급 운영 여부를 결정하여야 한다.
상기 4가지 사항에 대한 의사결정 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것이 바로 "조직에 미칠 영향"이다. 사람마다 자신에게 맞는 옷이 있는 것처럼 조직 역시 그에 맞는 직급체계가 존재한다. 따라서 잘 나가는 스타트업 혹은 대기업에서 직급을 축소하고 호칭을 통합하는 등의 변화를 가한다고 하여 곧이 곧대로 따라해서는 낭패를 볼 수 있다.
(물론, 일부 의사결정자들이 조직에게 무리를 주지 않는 선상에서 자신의 성과 달성을 위해 호칭을 이랬다 저랬다 바꾸는 경우가 있는데, 구성원들에게 혼란만 가중시키는 결과를 종종 보았다.)
직급체계는 그 자체만으로도 조직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하나 대개 인사평가, 보상 등 다른 인사 기능과 결합하여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수 많은 인사기능과 조직 내 역학관계를 전부 고려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직급체계만 고려하였을 때 조직에 미칠 효과성(영향)을 검토해보겠다. 물론, 수 많은 영향이 있을 수 있으나 주효한 것들을 위주로 다루겠다.
Ⅱ. 직급의 개수와 체류연한 → 성장 체감과 승진 적체, 리더십
MMORPG 게임에는 레벨링 시스템이 있다. 모험을 하고 전투를 하는 과정 중에 쌓인 숙련도를 레벨로 표현한 것인데, 이러한 레벨은 플레이하는 캐릭터가 보유한 강함의 지표가 된다. 높은 레벨은 다른 유저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자기 인지적으로는 자부심으로 이어지게 된다. 게임사는 이러한 레벨링 시스템을 정교하게 설계함으로써 유저들이 지속적으로 게임에 몰입하게끔 유도한다.
※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되는지 궁금한 독자라면 장명곤 저 『RPG 레벨디자인』의 목차라도 읽어보길 권함.
현실도 이러한 레벨링 시스템이 존재한다. 다만 내가 노력하여 실력이나 역량이 어느정도 축적되었는지에 관하여 게임과 같이 가시적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이러한 "성장의 비가시성"은 성장에 대한 즉각적인 체감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몰입도를 떨어트릴 수 있다. 그래서 조직은 직급체계라는 조직 내 레벨링 시스템을 만들어 성장의 체감 정도를 가시화시킨다.
네이버가 직원 개개인에게 성과를 독려하는 5단계 레벨제를 도입한다.
27일 네이버에 따르면 최근 기술 직군을 대상으로 레벨제를 도입하기 위한 설명회를 개최, 기술 직군을 대상으로 3~7까지 5단계의 레벨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다만 대외적으로 공표하는 것이 아닌 개인의 평가 시스템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기존에 호칭이나 직급이 없다보니 성장의 가시성에 대한 요구가 많았다"면서 "글로벌 확장을 통해 회사의 성장을 이뤄내는 상황에서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혹자는 직원들을 업무에 몰입시키기 위하여 직급의 개수를 최대한 많이 만들고 처음에는 쉽게 승진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말미에는 어렵게하여 게임의 레벨링 시스템과 같이 구성하는 것을 제안하기도 하나, 조직과 게임이 다른 점은 게임은 사람들 간의 인화가 필수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조직은 팀 단위로 움직이는 경우가 절대적 다수이며 성과를 달성하기 위하여 팀 내에서의 적절한 리더십과 구성원들의 협력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게임은 단독 플레이에 어려움이 없으며 일부 협력이 필요한 경우가 있으나 임시적이다. 즉, 게임은 사회적 거리감이 높더라도 성과를 달성하는데 어려움이 없으나 조직은 팀 내에서 사회적 거리감이 높아질 수록 성과 달성이 어려워진다. 켈의 법칙(Kel's Law)에 따르면 조직에서 상사와 부하직원이 한 직급 씩 벌어질 때마다 심리적 거리감은 제곱만큼 비례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임원과 사원 간 5단계의 갭이 있다면 5의 제곱인 25단계의 벽이 존재하는 것과 진배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직급의 수는 구성원의 성장에 관한 적절한 체감과 적정한 사회적 거리감이라는 양 극단에서 최적을 탐색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직급별 체류연한은 직급 승진에 따른 승진 가산금, 매년 평균 인금 인상률 등을 감안하여 조직이 감당할 수 있는 인건비 소요액 범위에서 최대값이 설정된다. 왜냐하면 직급체계는 결국 보상(Compensation)과 결합된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건비가 허락하는 한도로 제한되어야 한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하였으니 인건비를 고려한 최대 체류연한 설정은 참고하기 바란다. 이후 우리에게 중요한 의사결정 문제는 최대 체류연한 내에서 최소 몇 년을 해당 직급에 머물렀을 때 승진의 기회를 주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탐색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①승진 적체, ②산업 특성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먼저, 최소 체류연한을 짧게 설정하는 경우 고 직급에서 승진 적체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직급별 TO는 한정적이고고 직급으로 높아질 수록 이러한 경향은 깊어진다. 그럼에도 하위 직급에서 빠르게 승진할 수 있는 기회를 받게 되면 상대적으로 고 직급 영역에서 병목이 발생할 수 있다. 직급의 수가 많다면 어느 정도 완화될 수 있겠지만 최근 직무가 과거와 달리 분화 정도가 그다지 높지 않다는 점에서 무분별한 상위 직급의 양산은 조직 내 공정성 이슈를 발생시킬 우려가 있다. 따라서 동종 업계에서 승진 시 소요되는 기간을 조사하여 레퍼런스로 삼고 조직의 특성에 부합하게 미세 조정을 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직급의 체류연한은 조직 내 인력의 고령화 수준과 근속연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이는 조직이 처한 산업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 만약, 조직이 처한 환경이 경기와 상관없이 혹은 경기 사이클이 매우 느려서 안정적인 특성을 보이는 식품, 에너지 산업 등과 같다면 "경험의 수요"가 강해진다는 점에서 직급별 체류연한은 높아질 수 있다. 이때 조직의 구성원 연령이 대체로 높아진다. 반대로 IT산업과 같이 상당히 빠른 변화에 처해진 조직의 경우 "기술의 수요"가 강해져 외부에서 기술인력을 확보하거나 내부의 인력을 유지시키기 위하여 직급별 체류연한이 짧아지거나 낮은 직급까지 직책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한다. 외부 영입과 내부 직원 이탈이 다른 산업군에 비하여 높아 조직 전체의 연령 구성비가 젊은 층에 포진해 있는 경우가 많다.
Ⅲ. 직급과 호칭의 관련성 → 조직문화
직급과 호칭이 Apple to Apple로 매칭되는 전통적인 호칭 및 직급체계는 조직 내 계층 구분을 공식화하여 명령과 복종의 메커니즘이 더욱 활성화되도록 촉진한다. 그러나 최근 수평적 조직문화 확산을 위하여 "프로", "님", "매니저" 등과 같이 호칭을 통일하는 사례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들 조직은 직급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직급은 존재하되 표면상에 들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특징이다. 다시 말해 진짜 직급은 그림자 속에 숨겨두고 대외적으로는 직급을 추론하기 어렵게 만들어 자유로운 문화 속에서 구성원들의 창발적 특성이 온전히 발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를 "그림자 직급(Shadow Levels)"라고 부른다.
다만, 그림자 직급은 외부 채용이 활성화되어 있고 태세우스의 배(Ship of Theseus)와 같이 구성원들이 자주 교체되는 조직에서 정착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사료되나, 구성원들이 근속기간이 대체로 높은 회사의 경우 내부 직원이 상대방의 직급을 대략적으로 추론하는 것이 용이해져 제도의 정착이 지연될 수 있다. 또한, 기존 직급체계 및 호칭체계가 가지고 있는 관성 때문에 내부 구성원들의 불만 표현이 초창기에 상당히 증가할 수도 있다는 점도 감안하여야 한다.
Ⅳ. 직군별 별도의 직급 운영 여부 → 구성원 전문성 강화
비즈니스 전문 매체 앙트러프러너(entrepreneur)는 『The Employee Retention Master Tip for Technology Companies』에서 "업스킬링은 직원의 근속연수를 높이는 방법의 하나"임을 소개하였다. '업스킬링'이란 지금 하는 일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새로운 기술을 익히거나 더 복잡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숙련도를 높이는 것을 말한다.
또한, 구글은 연말 평가를 폐지하고 수시로 성장을 위한 피드백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성과관리 제도를 도입하였고, 어도비 역시 분기 단위 수시 피드백으로 구성원들의 성장을 지원하였다. 그 밖에 제너럴일레트릭, 카길 등 업력이 100년이 넘는 기업들도 수시 피드백 제도를 수용하고 나섰다.
이처럼 많은 기업들이 내부 구성원들의 역량 개발 및 전문성 강화를 어떻게 지원할지 고민하고 있다. 직급체계를 설계할 때에도 이러한 고민이 필요한데 구글, 삼성화재서비스, SK C&C 등은 직군이 구분되는 경우 기술직, 상담직, 전문직 등의 직급체계를 일반직, 사무직 등과 다르게 설계하고 있다. 이렇게 직급체계를 별도 트랙으로 분리하여 설계하는 경우 각 트랙별로 차별적인 인사제도를 적용하기가 용이해지며 각 직군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동기부여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다만, 트랙별 보상 등에 있어 균형이 과도하게 깨질 경우에는 형평성 이슈가 발생할 우려가 있으며, 초기 스타트업과 같이 기술·사업·경영부서 등이 구분없이 함께 일하는 경우에는 직군별 별도 트랙을 운용하는 것이 직원들의 인화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참고 문헌]
1. 이수호, 대리·과장 없는 네이버, 남다른 동기부여…5단계 레벨제 도입, TechM, 2020.11.27.
(https://www.techm.kr/news/articleView.html?idxno=77860)
2. 추가영, HR 3.0의 핵심은 지속적인 성과관리, LemonBase Camp, 2022. 8. 16
(https://camp.lemonbase.com/cpm/ag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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