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직급체계와 자주 하는 실수(또는 오해)
직급은 전체 인사관리의 뼈대를 구성하는 "기준"이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대다수의 기업들이 인사평가, 승진, 보상 등 다양한 HR 영역에서 이를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직급은 이러한 전통적인 인사준거로서의 기능을 넘어 조직 내 구성원들에게 각자의 역할, 책임 그리고 권한을 인식시키고, 조직 내외부의 다양한 집단 내에서 자신을 인지하는 자아실현 기능도 수행한다. 그렇기에 직급은 조직이 구성원들에게 기대하는 바를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도구이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직급이 가지는 이러한 목적을 망각하고 자신에게 부여된 권한(혹은 권력)에 취해 남용하기도 한다.(필자는 이를 "미성숙한 권력"이라 자주 표현함) 『디즈니만이 하는 것(2021)』에 따르면 디즈니 전 CEO 로버트 아이거(Robert Iger)는 자신과 가까운 거리에서 함께 일하는 임원들에게 "만약 내가 지나치게 오만하거나 인내심을 잃은 모습을 보이면 나에게 꼭 알려주어야 합니다."라고 요청할 정도로 직급에 내포된 위험성을 경계하였다.
"나에게 막강한 힘이 있고 내가 중요한 사람이라고 온 세상이 부추기더라도 본질적 자아에 대한 인식을 놓치지 않는 것이 바로 리더십의 비결이라는 얘기다. 세상이 하는 말을 지나치게 믿기 시작하는 순간, 어느 날 거울을 보며 이마에 자신의 직함이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 이미 삶의 방향은 사라진 것이다."
- Robert Iger -
한편,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개개인들이 직급을 남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회사 직급체계를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낮은 직급에게 차장급 직무 혹은 더 많은 업무를 부여하지만 그 만한 보상이 뒤따르지 않은 기형적인 운영 방식이나 산업군의 특성, 노동조합, 조직구조와 일하는 방식 등은 고려하지 않는 채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정착시킨다는 명목 하에 소위 '묻지마 직급 통합'를 단행하는 경우 등이 그 예(例)이다. 사실, 묻지마 직급 통합의 숨겨진 목적은 직급을 통합시킴으로서 승진 가산금의 지급 액수를 줄이려는 의도이지만, 쉿! 이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례들을 접할 때마다 필자는 대다수 조직들이 자신들만의 인재상과 핵심가치를 만들어 놓고 그것을 인사철학으로 연결지어 인사제도에 녹이지 못 하는 것이 안타깝다.
Ⅱ. 직급체계에 관한 조직의 인사철학
직급은 조직이 구성원들에게 원하는 바를 전달하는 "매체"이다. 그렇다면 조직은 그 매체에 어떤 메시지를 넣을 것인지 결정할 필요가 있다. 즉, 직급이 조직 구성원인 당신에게 무엇인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의미를 구체화하는 과정은 조직의 인사철학을 바탕으로 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저마다 각자 다른 욕구를 가지고 있고 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지 여부는 조직이 인사제도에 내포시키는 철학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지배 욕구] 악셀 호네트(Axel Honneth)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능력과 가치를 타인이 확인해 주길 바라며, 본인이 사회적으로 가치 있다고 판단되는 이들에게 '인정'받고 싶어한다"고 강조한다. 덧붙여 인정을 받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를 검증받게 되는데 이를 '사회적 평가'라 부르며 이러한 사회적 평가의 이면에는 위계구조가 자리잡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흔히 수직적이며 관료적이라고 평가하는 조직에서 직급은 이러한 이론을 바탕으로 이루어 진다. 이들 조직에서는 "직급이 곧 계급"이 된다. 임원만이 사용할 수 있는 임원 전용 엘리베이터, 일반 직원들의 인사를 무시하는 임원 등은 호네트가 말하는 인쟁투쟁의 결과이자 부산물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성장 욕구] 맥클리랜드(McClelland)는 인간의 욕구를 성취욕구, 권력욕구, 친교욕구로 구분하고 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직무를 부여하여 구성원들을 동기부여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특히 이중에서 성취욕구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는데, 국가의 경제성장 정도는 일반 국민의 평균적인 성취동기수준과도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높은 직급은 자신의 커리어를 성장시킬 수 있는 좋은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기회와 가능성을 의미한다. 이들 조직에서는 "직급은 역량 성장 단계"가 된다. 따라서 쿠팡, 우아한 형제들 등과 같이 개인의 성장과 커리어 발전이 중요하고, 그러한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경우 전직이 용이한 IT산업에서 직급은 주로 이러한 의미를 갖는다.
[공정성 추구 욕구] 브룸(Vroom)은 조직 구성원이 느끼는 보상의 매력 정도와 투입된 노력과 성과와의 연결 강도, 그리고 성과와 보상 간의 인과관계가 강할 수록 동기부여의 강도가 강해진다고 이야기하였다. 보상의 매력 정도를 "유인가(Valence)", 노력과 성과와의 연결 강도를 "기대치(Expectancy)", 성과와 보상 간의 인과관계를 "수단성(Instrumentality)"라고 명명하여 브룸의 기대이론을 VIE모형이라고도 부른다. 본 이론에 기반하여 "직급은 조직에서 기대되는 역할 및 책임의 수준"으로 정의해볼 수 있다. 직급 수준에 따라 본인이 수행 가능한 역할 및 책임을 할당받고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이와 연동된 보상을 받는 것이 당연한 조직에서 수용될 수 있는 직급의 의미이다. 만일, 당신 조직에서 낮은 직급의 직원이 높은 직급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음에도 보상수준이 상향 조정되지 않는다면 성과와 보상으로의 연결 기대치가 깨지면서 조직에 불만이 싹틀 것이며, 반대로 높은 직급의 직원에게 낮은 직급이 수행하는 단순반복 업무만을 부여한다면 보상에 대한 흥미와 매력이 떨어져 직원의 노력 동기가 훼손될 수 있다.
[성취 욕구]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에드워드 레이지어(Edward Lazear)는 경쟁에서 이긴 승자에게 더 많은 보상이 주어진다는 사고에 기초하여 직급에 부여된 여러 보상의 수준이 직원들을 끊임없이 경쟁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고 주장한다. 정리하면 사장에게 높은 연봉을 부여하는 것은 사장을 동기부여시키기 위함보다 부사장에게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동기를 자극하기 위함이 크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직급 간 높은 임금격차는 당연하게 여겨지고 직책자에 대한 성과 압력은 상위 직급으로 올라갈 수록 강해진다. 이에 따르면 "직급은 얻을 수 있는 보상 크기"를 나타낸다. 성과 측정이 용이한 직군이나 높은 수준의 성과 관리를 수행하여야 하는 조직에서는 이러한 직급의 의미가 유용하다. 다만, 이는 자칫 조직 내 협력과 교류를 해칠 가능성도 있어 조심스러운 접근이 요구된다.
당신 조직의 직급체계가 어떤 욕구를 가진 구성원들을 살찌우고 있는지 확인하고 그것이 현재 당신이 속한 조직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직급이 가진 의미를 재구성하는 작업을 추가로 수행하여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계속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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