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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이야기

[인사-23020] 경쟁적 이기주의와 스타하노프 운동

by 노동법의수호자 2023.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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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경쟁적 이기주의'와 동료평가의 부작용

"동료에게 밉보였다고.." 토스 직원들 '줄퇴사', 왜? / SBS 8뉴스 이미지 발췌

 

토스(Toss)는 23년 초 직장 내 괴롭힘과 강압적인 권고사직 논란이 발생한 적 있다. 사건의 발단은 개발팀 45명 중 6명이 줄퇴사하며 점화하였다. 한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내에서는 토스의 '동료평가'와 그에 따른 부작용을 설토하는 장이 열리기도 하였다.

 

토스는 과거서부터 "썩은 사과 철학(부정적 영향력을 가진 좀비 직원은 주변 동료들을 감염시킨다는 논리)"에 기반해 같이 일하기 어려운 직원들을 솎아내는 시스템이 존재하였는데, 이 시스템이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연료는 '동료평가'다.(유사한 제도로서 21년 초 카카오에서 문제된 '동료평가'도 있다.)

 

동료평가는 여러 사람이 평가에 참여할 수 있으므로 일응 타당할 것이라 곧잘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제한된 자원을 동료 사이의 평판에 의해 배분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더 많은 자원(승진·연봉 등)을 확보하고 싶은 사람은 동료평가라는 '칼'을 가지고 가차없이 동료들을 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조직 정치는 만연해지고 서로를 신뢰할 수 없는 문화가 자리잡는다.

 

이러한 "경쟁적 이기주의*"를 가장 잘 보여준 사례가 "엔론(Enron)"이다. 텍사스에 본사를 둔 에너지 회사인 엔론의 CEO 제프 스킬링(Jeff Sklling)은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 그리고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와 그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로부터 영감을 얻어 과도하게 치열한 사내 경쟁을 선동하였다.

※ (경쟁적 이기주의란?)경쟁에는 서로의 성장과 발전을 자극·유도하는 건전한 경쟁이 있는 것에 반해, 경쟁 상대를 고사시키거나 짓밟아야 하는 이기적인 경쟁이 존재한다. 여기에서는 이러한 이기적인 경쟁에 주목해 글을 작성하였다.

※ 크리스 렌윅(Chris Renwick) 「Bread for All: The Origins of the Welfare State」

스킬링은 '랭크 앤드 양크(Rank & Yank)'라는 동료 심사 위원회를 만들었다. 이 절차에 따라 최고의 직원(1)부터 최악의 직원(5)까지 등급을 매기고 5등급을 받은 직원들을 해고했다. 매년 직원의 20퍼센트를 잘랐고 심지어 그들의 사진을 회사 웹사이트에 올려 굴욕감을 주었다. (중략) 스킬링이 만든 위원회의 기저 논리는 인간에게는 탐욕과 공포라는 두 가지 근본적 동기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논리는 스스로 실현되는 예언이 되었다. 사람들이 엔론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꺼이 다른 사람의 목을 자르려 했기 때문에, 회사 안에서 끔직한 부정을, 회사 밖에서는 가혹한 착취를 저지르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것이 결국 2001년 엔론이 붕괴한 원인이다.

 

한편, 동료평가가 아니더라도 경쟁적 이기주의가 발현되어 끔직한 결과가 초래된 사건도 있다. 바로 소련의 "스타하노프 운동"이 그것이다. 이하에서는 스타하노프 운동의 발단과 전개양상,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서 살펴봄으로써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을 검토해보고자 한다.

 

Ⅱ. 스타하노프 운동의 발단

알렉세이 그리고리예비치 스타하노프

 

1928년 소련은 5개년 경제계획 기간 동안 노동생산성을 강화하기 위하여 사회주의적으로 경쟁하는 체계를 만들었다. 개인의 작업량에 따른 보수, 보너스, 주택, '부족한 물자' 제공, 교육 기관, 요양원 같은 혜택을 통해 개인의 노동생산성을 자극하였다. 이러한 물질적 보상 외에도 구내식당에 꽃으로 장식한 테이블을 놓아주는 식으로 헌신한 노동자를 예우하였을 뿐만 아니라, 가장 훌륭한 성과를 낸 노동자에게는 소브나르콤(인민위원평의회, Sovnarkom) 국가 훈장, 노동 적기 훈장 등을 수여하였다. 또한, 이러한 훈장 수여자는 전국 일간지 <프라우다(Правда)>에 이름이 게재됨으로써 타인의 모범이 되었다.

 

1935년 9월 1일 국제 청년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알렉세이 G. 스타하노프(Aleksei G. stakhanov)와 두 조수가 돈바스 석탄 지대 중앙 이르미노 광산의 기준 생산량을 초과 달성하는 도전에 나섰다. 8월 31일 밤 10시부터 시작한 스타하노프는 자신의 근무시간대인 6시간 동안 잭 해머로 석탄 102톤을 캐냈다. 기준 생산량의 14배가 넘는 양이었다. 

 

스타하노프는 노력의 대가로 평소 임금인 23~30루블 대신 2백 루블을 받았지만 이것은 사소한 시작에 불과했다. 성과를 올린 직후 오전 6시에 소집된 공산당 지역 위원회 특별 회의에서 위원들은 그의 기록이 세계 최고의 생산성 기록이라고 선포했다. 미국 역사학자 루이스 H. 시걸바움(Lewis H. Siegelbaum)은 그의 저서에서 스타하노프 운동에 관해 아래와 같이 서술하였다.

스타하노프의 이름을 광부의 명예의 전당에 눈에 띄게 전시하기로 했다. 그에게 한 달치 급여에 해당하는 보너스를 지급하고, 그와 그의 가족에게 기술직 직원에게 분양되는 아파트를 제공하였으며, 아파트에 전화기와 '필요하고 편안한 모든 가구'를 설치하게 했다. 광부 조합이 스타하노프와 그의 아내에게 영화관 티켓과 지역 노동자 클럽의 라이브 공연 티켓을 지급하고 리조트 자리를 내주게 했다. 지역당, 노동조합, 관리직 지도자들이 의무적으로 참석하는, 채탄부를 위한 특별회의를 열어 스타하노프가 연설하게 하고, 부문별로 가장 잘 모방한 노동자를 뽑는 경연을 개최하기로 했다. 또한, "스타하노프와 그의 기록을 비방하는 사람"은 "당 위원회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인민의 적으로 간주한다는 사실을 경고하기로 했다."

 

Ⅲ. 스타하노프 운동의 전개

스타하노프 운동 기념 우표

소련은 스타하노프를 영웅으로 치켜세우며, 전 인민들에게 이를 모방하도록 선전을 실시한다. <프라우다>가 관련 기사를 내자마자 2주도 안 되어 '스타하노프 운동'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고, '기록광' 열풍이 전국을 휩쓸며 1935년 11월에 절정에 달했다. 

 

이미 상을 받은 노동자들 사이에서 '스타하노프 여단'이 생겨났으며, 뒤를 이어 '스타하노프 총연합'이. 그리고 지도적 스타하노프주의자들이 가르치는 현장 교육과정인 스타하노프 학교가 세워졌다. 이 운동은 특히 청년층의 많은 관심을 끌었으나, 여성이 스타하노프주의자로 참여하기엔 시대적·상황적 여건이 좋지 못했다.

 

그렇기에 여성이 스타하노프주의자가 되면 엄청난 유명 인사가 되기도 하였다. 최초의 여성 트랙터 작업대 대장 파샤 안젤리나는 콤소몰(소련 청년 정치 조직, Komsomol) 10차 회의에서 1백 명 넘는 사람이 자신을 둘러싸고 악수하고 재킷을 잡아당겼다고 불평할 정도였다. 

※ 파샤 안젤리나가 흥얼거인 차스투쉬카(생활 속요, Chastushka) 중 일부 내용

오, 감사해요, 친애하는 레닌 님.
오, 감사해요, 친애하는 스탈린 님.
오, 감사해요, 거듭 감사해요.
소비에트의 힘을 만들어주셔서요.
엄마, 나를 위해 바느질해주세요.
멋진 빨간색 옥양목 드레스를 만들어주세요.
스타하노프주의자와 함께 산책할래요.
뒤떨어진 사람하고는 가고 싶지 않아요.

 

Ⅳ. 스타하노프 운동의 결말과 시사점

스타하노프 운동이 절정을 맞이한 '기록광' 시대에 하나 둘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나타난 부작용은 "임금률 급락"이었다. 작업량제 임금 체계에서 생산량 목표가 초과 달성되면 관리자는 기준 생산량을 높인다. 지금까지 노동자 집단은 지속 가능한 속도로 협동하며 일함으로써 서로의 이익을 지킬 수 있었지만, 몇몇 열성적인 스타하노프주의자가 기준 생산량을 높이는 바람에 '뒤떨어진' 노동자가 양산되고, 생활 가능한 임금을 받지 못하는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스타하노프주의자의 기록 경신(경쟁)에 대한 집착은 동료 노동자뿐만 아니라 관리자까지 위협했다. 계속해서 기록이 깨진다는 것은 이전에 설정한 기준이 너무 낮았음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많은 관리자들이 태업* 혐의를 쓰고 해고되거나 더 심하게는 투옥되고 심지어 처형되었다.

※ 태만히 업무를 하는 행위 

 

이 운동이 진행되는 동안 낮은 생산성을 가진 노동자와 관리자 모두 무차별적이고 심각한 박해의 희생자가 되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 하에서 경쟁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경쟁을 통해 우리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행복)까지 전도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남들을 짓밟고 괴롭히면서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어느 순간 우리는 자꾸 서로를 비교하고, "뒤떨어진 자"를 선별하려고 한다. 이것이 조직 내 '경쟁적 이기주의'를 잉태하는 씨앗이며, 향후 친구, 동료, 가족 나아가 국가까지 파괴할 수 있는 어마무시한 폭탄이 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얀 뤼카선, 『인간은 어떻게 노동자가 되었나』, 모티브북, 202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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