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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이야기

[인사-24001] 권력자의 뇌와 직장 내 괴롭힘·성희롱

by 노동법의수호자 2024.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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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X발 내가 너 기분까지 생각해주면서 일해야 하냐?

 

당신은 누군가로부터 괴롭힘을 당해본 적이 있는가? 혹은 상사로부터 폭언·욕설을 듣고 가슴이 두근 거려본 적이 있는가? 어떤 이들에게 일터는 자신의 육체와 정신이 도살당하는 것을 살아있는 채로 지켜봐야 하는 도축장이다.

 

필자가 노무사로서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담당할 때마다 안타까운 것은 "권력편향적 처벌"이 이루어질 때다. '권력편향적 처벌'이란 조직 내에서 권력을 가졌거나 가질 확률이 높은 자가 잘못하였을 때 가벼운 처벌로 사건을 무마시키는 것을 말한다. 

 

필자가 한 중견기업의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맡아 피해자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을 무렵, 갑자기 사건을 의뢰한 회사의 대표이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잠깐 만나고 싶다는 그의 제안에 따라 미팅을 진행하였는데, 결론만 말하면 이 사건의 결말을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닌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였다.

 

우리에게 돈을 지급하는 "고객"의 요구를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으나, 인터뷰 과정에서 불안해하며 휴대폰이 울릴 때마다 심장이 내려앉는 고톻을 겪고 있는 피해자의 모습을 보며 필자는 딜레마에 빠졌다.(이야기의 결론은 어떻게 되었을지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이렇듯 권력의 편애(총애)를 받는 사람은 권력을 얻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 권력은 자신을 보호하고 누군가를 해치는데 사용될 수 있다. 그렇다면 권력은 왜 주변인을 해칠까? 권력이 사람을 바꾸는 것일까? 아니면 원래 소시오패스(Sociopath) 및 사이코패스(psychopathy)가 권력을 가질 확률이 높은 것일까?

 

"나에게 막강한 힘이 있고 내가 중요한 사람이라고 온 세상이 부추기더라도 본질적 자아에 대한 인식을 놓치지 않는 것이 바로 리더십의 비결이라는 얘기다. 세상이 하는 말을 지나치게 믿기 시작하는 순간, 어느 날 거울을 보며 이마에 자신의 직함이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 이미 삶의 방향은 사라진 것이다."

- Robert Iger(월트 디즈니 전 회장) -

 

 

Ⅱ. 권력이 인간의 뇌에 미치는 영향

1. 공감능력의 저하

권력은 그 자체로 사람의 뇌와 사고방식, 그리고 행동을 바꾼다는 연구들이 지금까지 다수 발표되었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켈로그경영대학원 소속 애덤 갈린스키 교수는 '알파벳 E실험'을 통해 사람이 권력을 많이 가질 수록 공감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을 밝혀냈으며, 캐나다 윌프리드로리어대 제레미 호기븐 교수와 토론토대 마이클 인츠리트 교수는 그들의 공동 연구에서 권력을 가진 사람은 상대방의 감정을 헤아리는, 바꿔말해 역지사지를 담당하는 뇌의 거울 뉴런이 활성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또한, 미국 UC버클리대 다커 켈트너 교수는 권력에 취한 사람은 감정과 충동을 조절하고 사회적인 상호작용에 담당하는 안와전두엽이 손상된 환자와 유사한 행동을 보인다고 지적하며, 이로 인해 누군가에게 더 쉽게 화를 내고 상처입힐 수 있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아일랜드 트리니티칼리지 심리학과 이안 로버트슨 교수는 권력이 주워지면 남녀 모두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증가하여 공감능력을 떨어트릴 뿐만 아니라 우뇌 전두엽(Right frontal lobe)의 활동을 둔화시켜 객관적인 자아성찰 기능을 마비시킨다고 한다.

 

이렇듯 권력을 가진 사람은 타인을 도구화시키고, 권위적이며 '함께'라는 가치를 훼손시킬 수 있으며 뻔뻔해질 확률이 높아지게 된다. 위에서 제시한 연구사례들 외에도 다양한 연구들이 존재하나 대부분의 연구들이 말하는 바는 동일하다. 

 

2. 도덕성의 저하

필자의 직업 특성상 불건전한 관계를 맺거나 그러한 관계를 시도한 직원들의 징계 사례를 주변에서 자주 접하는 편이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이러한 부도덕한 관계는 사회적으로 알아주는 대기업이나 고소득자 또는 직급이 높을 수록 자주 발생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경북대 사회학과 노진철 교수는 간통을 일종의 권력문제로 접근하여, 소득수준이 높거나 직급이 높은 사람 중 간통 경험자가 많은 건 자신이 일정한 권력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려는 심리적 반작용이라고 말했다. 실제 2015년 실시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소득 수준별로 ▲50만원 미만 11.9% ▲월 50만~100만원 미만 13.0% ▲100만~299만원 22.9% ▲300만~499만원 31.2% ▲500만~699만원 42.3% 등 높은 소득군(群)일수록 간통을 흔히 경험했다고 응답하였으며, 특히 개인 월 소득 700만원 이상 계층은 51.6%가 간통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이와 유사하게 직급과 직업도 간통 경험률의 차이를 가르는 핵심 변수로 작용했다.)

 

한편, 2017년 미국 내 정부기관에서 일하는 약 1만 1000명을 대상으로 1년 간 자기 조직 내부에서 벌어지는 불법적이거나 비도덕적인 행태에 대해 '고발'한 횟수에 대해 조사한 결과 성별·나이·인종·학력·근무기간 등과 관계없이 '직위'가 높은 사람일 수록 그렇지 않는 사람들에 비해 보고 횟수가 적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심지어 국내 연구진은 고권력자일 수록 타인의 비도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엄격한 반면, 본인의 비윤리적이거나 비도덕적인 행동에 대해선 너그러운 소위 '내로남불'의 특징을 통계적으로 검증했다.

 

종합하면 권력(돈, 직급 및 직위 등)을 많이 가진 자는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비윤리적인 행위를 할 가능성이 높으며, 나아가 타인의 잘못에 대해서는 지탄하고 비난하지만 자신의 비윤리적인 행위에 대해선 오히려 두둔하거나 옹호하는 "도덕적 이중성"을 보일 확률이 높다. 

 

3. 자기 확신(오만, 자아도취)의 강화

독일 쾰른대의 심리학자 라머스(Lammers)와 부르그너(Burgner)는 권력이 "정박 효과(Anchoring effect)"를 강화시킬 수 있음을 일련의 실험을 통해 확인하였다. '정박 효과'란 1974년에 인지심리학자인 트버스키(Tversky)와 카너먼(Kahneman) 교수가 실험 연구를 통해 밝힌 개념으로서 사람들의 판단이 사전에 주어진 기준을 중심으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을 말한다. 즉, 권력자들은 주워진 정보를 기준으로 쉽고 빠르게 결정을 내리려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그들이 보통 사람들과 다르게 자신이 틀렸을 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권력자는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스탠퍼드 연구팀은 연구 참가자들에게 주사위를 던졌을 때 나오는 숫자를 맞추면 선물을 주겠다고 하며 두 가지 선택지를 주었다. 하나는 피실험자 본인이 직접 주사위를 던지는 것과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이 주사위를 대신 던져주는 것이다. 무권력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58%만이 직접 주사위를 던졌으나, 권력자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모두 직접 주사위를 던졌다. 누가 던지든 확률엔 변화가 없으나 권력을 가지면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마저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실험이 하나 더 있다. 미국 서부의 UC 버클리대학의 심리학자 폴 피프(Paul Piff)는 모노폴리 게임으로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이 실험은 게임 시작 전 "동전 던지기"를 실시하고 그에 따라 참여자 중 한쪽이 자신의 상대방에 비해 더 유리할 수 밖에 없도록 설계되었다. 애초부터 승자는 동전 던지기(운)로 결정된 셈이다. 그런데 게임이 진행되면서 승자들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모습이 점차 사라지고 거만해졌다. 자신의 승리를 과시하고 자신의 실력(능력)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인정받고 싶어할 뿐만 아니라, "나는 지금 천하무적인 상태야", "너는 곧 돈을 다 잃게 될 거야" 등과 같은 말을 하며 상대방을 조롱했다.

 

권력자는 자신이 권력을 흭득하기까지 사실상 "운"이라는 통제불가능한 요소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하며, 자신에 대한 과잉 확신을 가지게 된다. 그로 인해 스스로에 대한 자아성찰 기능이 마비되고 약간의 정보나 자신이 신뢰하는 특정 인물의 말에 의해 호도되어 판단력을 상실할 수도 있다. 사소한 행동이지만 직원들의 인사를 받아주지 않고 무시하는 임원들이 대개 이런 성향이 강한 특징을 보일 것이다.

 

Ⅲ. 권력과 뇌의 상호 인과관계 규명

지금까지 논의를 진행하면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원래 사이코패스 같은 사람들이 권력을 획득하기 용이한 것인지 혹은 권력 자체가 일반인을 사이코패스적 특징이 나타나게 끔 변화시키는 것인지에 관한 의문이다.

 

1998년 쿠키 몬스터(Cookie monster) 실험이 이루어졌다. 이 실험은 권력을 가졌다는 인식만으로도 사람의 행동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실험 대상자들은 3명 씩 조를 이루어 간단한 과제를 수행하도록 하고, 이 중 한 명을 무작위로 선발해 같이 일하는 2명의 업무를 평가하고 보수를 결정할 수 있는 권력을 부여하였다. 그런 뒤 연구자가 쿠키 5개가 담긴 접시를 테이블에 두고 그들의 행동을 관찰했다. 그러자 권력을 부여받은 사람은 무례한 자세로 다른 인원들에 비해 쿠키도 많이 먹고 부스러기도 많이 떨어뜨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즉, 일반인들도 권력이 주워지면 충분히 무례한 태도가 나타날 수 있다. 반대로 사이코패스적 성향의 인물들이 직장 내에서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할 확률이 높다고 보는 연구도 존재한다. 호주 본드대의 범죄심리학자 나단 브룩스가 이끄는 연구팀이 1000여명의 미국 CEO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방식을 통해 분석한 결과, 21%가 임상적으로 강력한 사이코패스(psychopath)적 특성을 보였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인구당 사이코패스 비율은 약 1~4%인 점과 비교하면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사이코패스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

 

즉, 권력은 일반인을 사이코패스적 성향을 가진 인물로 변화시킬 수도 있고, 원래 그런 인간이 권력을 얻으면서 더욱 이기적인 특징이 강화되는 경우도 있다.  

 

Ⅳ. "비정상의 정상화"와 인사노무 담당자의 역할

중앙일보, 기사 사진 발췌

 

23년 한국의 직장에서 일어났을 것이라고 도저히 믿기지 않는 사건이 발생했다. 한 성인용품 업계 회장이 직원을 채용할 때 성희롱성 질문을 던지거나 직원들에게 성관계를 지시하고 촬영하는 등 충격적인 회사 운영 실태가 밝혀졌다. 해당 회장은 "성관계도 일의 일부"라고 가스라이팅을 하며 워크숍에서 남녀 직원 가리지 않고 성행위를 하게 했다고 한다. 이런 충격적인 기업 실태가 왜 이제서야 밝혀지게 된 것일까?

 

직장 내 괴롭힘(또는 성희롱)을 당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관(주관)이 흔들리는 것을 자주 경험하게 된다. 욕설과 폭언, 성추행 내지 성희롱 등 객관적으로 봐도 이상한 상황임에도 주변인들의 무비판적 수긍과 "조직 생활의 일환"이라는 자신이 만든 착각이 비정상적인 직장생활을 그대로 수용시키며, 자신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치부하게 만든다. 이러한 "비정상의 정상화"는 경험이 적은 사회초년생들에게 많이 나타나며, 취업이 힘든 현 상황을 악용하려는 "돼 먹지 못한 어른(권력자)"들에 의해 자행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반대의 상황도 존재한다. 애시당초 정상적이지 않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입사하여 객관적으로도 양호한 직장 생활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트러블 메이커"들도 있다. 이들은 기업 채용 단계에서부터 녹음기를 켜고 다니며, 자신의 "관점"에서 조직생활의 불편한 부분을 기록하고 증거를 수집해 법적인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사람들이다. 권력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적극적으료 이용해 상황을 유리하게 변화시키는 비전형적인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듯 권력에 의한 "비정상의 정상화"는 어느 일방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인사노무 담당자는 관점의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어야 할 것이며, 회사 내 이해관계(권력)로 인해 징계 등 인사조치의 판단이 오염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할 것이다.

 

 

 

 

[참고 문헌]

1. 이경민, 지위 높아질수록 공감 능력 떨어져 슈퍼스타들이여, 거울을 자주 보라, 동아비즈니스리뷰, 2020. 10.
2. 유영규 외, [2015 불륜 리포트] 기혼자 24%·월급 700만원 이상 52% ‘외도’… 불륜의 통계, 서울신문, 2015. 9.
3. 정은경. (2018). 권력이 도덕적 위선에 미치는 영향: 도덕적 정체성의 조절효과. 한국심리학회지: 사회및성격, 32(1)
4. 김민식, <김민식의 지식카페>자기 확신 강한 권력자·정치인, ‘정박효과의 오류’ 빠지기 쉬워, 문화일보, 2020. 7.
5. 김병수. (2015). 권력이 사이코패스를 만든다. 인물과사상
6. 조지선, [2018 포브스코리아 오만 포럼 | 지상중계(3)] 당신은 오만한 리더입니까, 중앙일보, 2018. 8.
7. 김인수, [김인수 기자의 사람이니까 경영이다] 당신의 보스가 자신감이 넘치는 이유(2):운과 실력을 구분하지 못해서다, 매일경제, 2015. 3.
8. 김진세, [전문가 포럼] 사이코패스가 되고 싶은가, 한국경제, 2017. 11.
9. 이해준,
비서 면접 때 "2대1 해봤냐"… 성인용품 회사 변태적 운영, 중앙일보, 202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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