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무 이야기

[노무-23042] 산업안전보건법상 작업중지권 행사의 정당성 소고

by 노동법의수호자 2023. 11. 19.
반응형

 

Ⅰ. 관련 법률과 쟁점

□ 민법 제761조 제2항은 급박한 위난을 피하기 위하여 부득이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 긴급피난자는 타인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없다고 규정

 

산안법('산업안전보건법' 약칭) 제52조 제1항은 근로자에게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있음을 명시

 

다만, 법문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실무상 노동조합이 쟁의행위의 한 방편으로서 작업중지권을 남용하거나, 회사가 이에 대응하여 작업중지권 행사 금지 가처분을 신청하는 등 쟁점 발생

 

따라서 이하에서는 어떤 경우에 작업중지권 행사가 정당화될 수 있는지 검토해보도록 하겠음

 

Ⅱ. 작업중지권 정당성 판단의 법철학적 근거

1. 긴급행위는 정당화될 수 있는가?

□ 급박한 위험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행위로 말미암아 타인의 재산권 등이 침해될 수 있는데, 이러한 기본권 침해를 피해자가 감수하도록 법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지 검토 필요

 

□ 헤겔은 인간의 생명과 자유에 대한 요구는 개개인의 권리에 우선하므로 생명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모든 행위는 당연히 정당화될 수 있는 권리로 평가하나, 칸트는 설령 긴박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행위라 하더라도 불법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으며 단지 처벌을 면할 뿐이라고 봄

※ 생각해봅시다! : 카르네아데스의 판자(Plank of carneades) 사고 실험

배가 난파 당해 사람들이 모두 바다에 빠졌을때,
그 중 한 사람이 난파선에서 흘러나온 판자를 붙자고 겨우 바다 위에 떠 있을 수 있었다.

이때, 미처 붙잡을 만한 것을 찾지 못하던 한 남자가 헤엄쳐 와 그가 의지하고 있던 판자를 붙잡았다.
두 사람까지 지탱할 만한 부력이 없던 판자는 이내 가라앉으려고 했고, 둘 다 빠져 죽을 것은 염려한 사람이
상대방을 밀어내어 익사케 하고 혼자만 살아남았다.

우리는 홀로 살아남은 사람이 죄를 지었다고 할 수 있는가? 혹은 처벌할 수 있는가?


이는 기원전 2세기 경 그리스 철학자 카르네아데스가 던진 철학적 문제로서, 
자신의 생명·신체의 안전을 지키기 위하여 타인의 권리를 희생시키는 것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2. 긴급행위의 정당화 요건

□ 정당화될 수 있는 긴급행위의 전제조건은 보호법익과 침해법익의 비교형량 결과 보호법익이 우월할 것을 요구

 - 우리나라는 이러한 요구를 사회적 연대와 공공의 질서라는 측면 하에 법 체계 내에서 허용

대한민국 헌법 제37조
①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ㆍ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 작업중지권의 행사에 의하여 보호되는 근로자의 법익은 생명 · 신체에 관한 인격권이고, 그로 인하여 침해되는 사용자의 법익은 재산권 · 노무지휘권 등임

 - 전자가 후자보다 더욱 중요하고 비중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사용자의 법익을 양보하도록 요구할 수 있으며, 이로써 작업중지권은 그 법적 정당성이 인정될 수 있음

 

(소결) 법익을 비교할 때 ⓐ보충성의 원칙, ⓑ이익형량의 원칙, ⓒ적합수단의 원칙을 기준으로 아래와 같이 판단된다면, 작업중지권 행사는 정당하다고 평가될 수 있음

 ⓐ 보충성의 원칙 : 작업중지권 행사 이외에는 위난을 피할 다른 방법이나 수단이 없는 경우

 ⓑ 이익형량의 원칙 : 작업중지권 행사로 인하여 보호되는 이익이 침해되는 이익보다 큰 경우

 ⓒ 적합수단의 원칙 : 작업중지권이 사회윤리나 법질서 전체의 정신에 비추어 적합하게 행사된 경우

 

Ⅲ. 산업안전보건법상 정당한 작업중지권 행사 요건

1. 산업재해 발생 가능성이 있을 것

□ 작업중지권은 생명·신체의 안전확보 및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기에,  당해 근로자나 다른 근로자 또는 작업장 내 다른 사람에게 산업재해 발생 가능성이 있다면 요건 충족

 - 따라서 하수급인의 근로자, 파견근로자, 공동수급인의 근로자 등도 산업재해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면 작업중지권 행사의 대상이 될 수 있음

 

발생가능성은 물리적·화학적·생물학적·공학적인 인과 관계가 인정되는 경우뿐만 아니라, 통상의 근로자라면 특정 작업환경에서 재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면 충분

[수원지법 2010. 10. 7. 2010노2392]

금속밴드가 휘어지는 등의 결과를 야기한 이 사건 설비사고의 내용으로 보아 위 사고가 작업자의 안전에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사고였다고 단정할 수 없고, 가사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당시로서는 피고인을 비롯한 작업자들이 그와 같이 생각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이와 같은 사고가 그 전날에도 발생하여 원인을 파악하고자 하였으나 이를 밝히지 못한 채 라인이 가동되었고 이후 또다시 이 사건 사고가 일어난 것인 점, 그에 따라 라인이 중단되고 원인파악을 위하여 회사 관리자 및 노조 측 산업안전위원 등이 협의를 하던 중 역시 사고의 원인을 파악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노조 측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생산주임 C가 라인 재가동을 지시한 점, 당시 C의 지시 내용이나 상황에 비추어 그러한 라인 재가동이 사고원인을 파악하기 위한 것으로만은 보이지 아니한 점, 기존에 설비이상 등으로 라인이 중단되었을 경우 노사가 그 원인파악 및 대책 마련을 위한 협의를 하여왔던 관행이 있었던 점 등을 모두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이 원심 판시 범죄사실 일시·장소에서 작업자들로 하여금 작업을 중단하게 한 행위는 원인을 모르는 반복된 이 사건 사고로 인하여 작업자가 신체에 위해를 입게 될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의도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고, 검사 주장과 같이 이 사건 사고를 빌미로 실질적으로는 회사의 업무를 방해할 목적으로 행한 것이라 단정하기 어렵다.
[권창영(2023) 215 주석 발췌]

세계적으로 약 3,200만 종의 유기물질, 무기물질, 자연물질, 합성물질이 등록되어 있는데, 약 110,000종의 합성화학물 중 단지 약 6,000종에 한하여 유해성 평가 자료를 얻을 수 있고, 직업상 노출 금지물질로 지정된 단일 화학물질은 약 600종에 불과하다. 또한 서울대 산학협력단의 2009년 보고서에 의하면, 삼성반도체 기흥사업장 제5라인에서 취급하는 화학물질의 구성성분이 총 83종이었는데, 그중 작업환경 측정이 이루어지는 물질은 24종(28.9%)에 불과했다.

▷ 산업재해 발생 인과관계 입증이 일반 근로자 입장에서 매우 어려우므로, 법원에서 인과관계 입증 책임을 완화한 것은 바람직한 결론이라 생각됨

 

2. 급박한 위험(산업재해 발생이 임박한 경우)이 있을 것

□ 통상의 위험이 존재하는 경우 근로자는 먼저 사용자에게 안전배려의무 이행을 청구하거나, 안전배려의무에 위반되는 행위의 중지를 청구하면 족함

 - 급박한 위험이 수반되는 경우에 한하여 산안법상 작업중지권의 행사가 가능

 

□ 급박한 위험이 존재하는지는 근로자 개인의 주관적 판단에 근거해야 한다는 "주관설"과 객관적인 상황에 비추어 판단되어야 한다는 "객관설"이 대립

1. 주관설 : 기아차 화성공장 사건(수원지법 2011. 2. 17. 2010노5562)
 - "유리창 파손 사고의 경우 그 파편에 의하여 근로자들이 상해를 입은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근로자들 또한 그와 같이 생각할 수 있었으리라 예상되는 점"
 - 근로자의 관점에서 그러한 사고 발생이 임박했을 것이라 우려된다면 급박한 위험이 있었다고 인정될 수 있음 

2. 객관설 : 한국지엠 부평공장 사건(서울행법 2012. 9. 27. 2012구합8878)
 - " 산업안전보건법 제26조 제2항 소정의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때'란 '객관적으로 보아 산업재해의 위험이 곧 발생할 것으로 충분히 예견되어 즉시 대피하지 아니하면 작업 중인 근로자의 생명ㆍ신체에 중대한 위험이 가해질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
 - 객관적인 상황에 비추어 그러한 사고 발생이 임박했을 것이 우려된 경우에 한하여 급박한 위험의 존재를 인정

 

최근 티오비스 누출 사건의 2심은 "근로자가 객관적인 상황을 손쉽게 파악할 수 있다면 이를 위한 최소한의 노력을 할 의무가 있고, 객관적인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기회를 의도적으로 배제해서는 안 된다"며 사실상 객관설에 의거해 판단하였으나,
 - (소결) 대법원은
그러한 최소한의 노력이 없더라도 ①관할 근로감독관의 대피 권고, ②소방본부의 대피명령 사실 등을 미루어 보아 근로자가 급박한 위험성을 인식하였다면, 작업중지권을 행사하는데에 필요한 요건은 충족하였다고 판시 → 주관설 채택

[티오비스 누출 사건 : 대법원 2023. 11. 9. 2018다288662]

이 사건 사고로 누출된 화학물질인 티오비스에서 발생한 황화수소는 흡입 시 눈, 코 또는 목에 자극을 일으키거나 호흡곤란 또는 후각 마비를 유발할 수 있고, 피부에 노출되는 경우 심한 통증과 수축 및 홍반이 나타날 수 있는 등 독성이 강한 기체이다.

당시 반경 100~150m 내에 있는 공장 근로자들에 대해 대피를 유도하였고, 반경 1km내에 있는 마을 주민들에 대해서는 대피방송이 이루어졌다. 따라서 이 사건 누출사고지점으로부터 반경 10m 이상의 지점에서 황화수소가 검출되지 아니하였더라도 황화수소의 분산으로 인한 피해 범위를 명확하게 예측하기 어려웠고, 상당한 거리까지 유해물질이 퍼져나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이 사건 누출사고가 발생한 지 24시간이 경과한 이후에도 오심, 어지럼증, 두통을 호소하는 피해자들이 다수 발생하였고, 누출사고 지점으로부터 200m 이상 떨어진 공장에서도 오심, 구토, 두통을 호소하는 피해자들이 발생하였던 사정 등에 비추어 보면, 누출사고 지점으로부터 반경 200m 정도의 거리에 있던 피고 회사 작업장이 유해물질로부터 안전한 위치에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나아가 원고는 피고 회사의 근로자이자 노동조합의 대표자로서 인체에 유해한 화학물질이 누출되었고 이미 대피명령을 하였다는 취지의 소방본부 설명과 대피를 권유하는 근로감독관의 발언을 토대로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존재한다고 인식하고 대피하면서, 노동조합에 소속된 피고 회사의 다른 근로자들에게도 대피를 권유하였다고 볼 여지가 있다.

그런데도 원심은 그 판시와 같은 이유만으로, 이 사건 누출사고 당시 피고 회사의 직원들에 대하여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원고가 V의 제안에 따라 재난지휘통제소를 방문하여 객관적으로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상황인지 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을 거부하였으므로 원고에게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할 위험이 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우며, 원고가 노조활동으로서 작업중지권을 행사하였다는 측면에서도 원고의 작업중지권 행사가 적법하지 아니하다는 전제에서 징계사유의 존부와 징계양정의 적정 여부를 판단하였다. 원심의 이러한 판단에는 앞서 본 작업중지권 행사의 요건,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의 판단기준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주관설에 따라 급박한 위험의 판단은 작업에 투입된 근로자들의 주관에 따라 이루어져야 할 것임 

 - 근로자들을 통제하는 관리자는  ⓐ공기 압박, ⓑ가동 중지에 따른 경제적 손실, ⓒ거래처와의 신뢰관계 등에 따른 사업주의 책임 추궁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급박한 위험에 대한 판단 주체가 되기 어려울 것

[조흠학(2014) 296면 주석 발췌]

94년 12월 7일 서울 마포구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사고 원인 중 하나가 “현장작업자가 가스폭발우려가 있어 작업을 중지하려고 직상급자에게 보고하였으나 보고받은 직상급자가 보고내용을 무시하고 작업을 계속 시행할 것을 지시했던 것”으로 나타난 점을 고려하고, 사고 발생 시 근로자와 직상급자간의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고자 하는 측면을 중심으로 동 제도를 95년 1월 5일 보완하였기 때문에 급박한 위험발생시 실질적으로 근로자 보호를 목적으로 제도를 형성한 ILO협약과는 근본적으로 도입취지가 다르다.

 

 

 

[참고문헌]

1. 김학태, “긴급권에 관한 법철학적 근거 -긴급피난을 중심으로-”, 법철학연구 제8권 제2호 (2005), 222-223면
2. 권창영. (2023). 작업중지권의 법리. 법학평론, 13, 9-84.
3. 조흠학, “산업안전보건법상 근로자의 권리 -작업중지권 실태조사를 중심으로-”, 노동법논총 제31집(2014. 8.)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