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채용 갑질의 원인 분석 계기 : 너희 도대체 왜 이러니..?
필자가 LG계열 대기업 한 곳에 면접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코로나 시즌이라 1차 면접은 영상으로 진행되었는데, 면접이 시작되자 마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일반적인 회사의 면접은 면접위원이 2~5명 정도인데 반해 이 곳은 면접위원으로 10명 정도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필자보다 연차가 낮은 신입부터 팀장까지 모두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물론 면접위원이 많았다고 하더라도 필드 노무사 생활을 오래했던 필자에게는 그리 큰 문제는 아니였다. 그러나 "진짜" 면접이 시작되자마자 팀장으로 보이는 남성이 자기소개를 시킨 뒤 본인은 의자를 뒤로 젖혀 고개를 돌리고 자기 시작했다. 황당한 상황은 거기서 끝이 아니였다. 막내로 보이는 한 남자 직원이 면접 시작부터 "필드에 오래 있었는데 그냥 남아있지 굳이 기업에 오려고 하냐", "나도 노무사인데 의견서 이 정도 써본 게 자랑이라고 이력서에 기재하셨나?" 등등 모욕적인 훈수를 두었다.(노무사 업계는 좁다. 뒤에서 알아본 결과 해당 막내 노무사는 필자보다 연차가 낮았다. 너 혹시 보고 있니..? ^^)
'아.. 이거 일부러 이러는 거구나..'
모욕성에 가까운 공격적인 질문을 받고나니 어차피 이 회사에 붙어도 가지 않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필자 역시 공격적으로 면접에 임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근데 정말 웃기게도 필자가 공격적으로 임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자고 있던 팀장이 일어나 해괴한 질문(하나님이 당신을 만들때 어떤 것을 주고 어떤 것을 주지 않았을까? 평생의 행운이 존재한다면 언제 쓰고 싶나? 등등)을 늘어놓으며 사실상 1시간 반 가량 반말과 조롱으로 점철된 불쾌한 면접을 보고 끝났다. 이 면접을 지켜보고 있던 채용 담당자도 미안한 마음 때문인지 혹은 형식적인 프로세스의 일환으로 그랬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짧게나마 죄송하다는 문자메시지를 남겨주었다.
이 사건 이후로도 필자는 현대, SK, LG 3개 그룹의 여러 면접을 다녀보며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현대 및 SK그룹의 면접위원들은 질문 수준 및 태도 면에서 진정성이 높았던 반면 LG그룹의 면접위원들은 그렇지 못했다.(물론, 종사하는 산업마다 약간씩 차이는 있었다.) 인사노무분야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이 문제는 무척 흥미로운 주제였다. 그 동안 면접(채용)갑질은 면접위원 개인에게 그 원인을 찾았지만, 그것 외에도 다른 원인(조직심리)이 존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Ⅱ. 채용 갑질의 원인 : 개인 vs 조직
1. 개인적 원인 : 낮은 자존감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스티븐 페인(Steven Fein)과 스티븐 J. 스펜서(Steven J. Spencer)의 연구에서는 명문대 학생으로 이뤄진 실험 참가자들에게 가짜 지능 테스트를 받게 한 다음 그중 한 그룹에는 나쁜 평가('당신의 지능은 평균보다 약간 낮은 47퍼센트에 속합니다.")를 내린 반면, 다른 한 그룹에는 좋은 평가('당신의 지능은 평균을 훨씬 웃도는 93퍼센트에 속합니다')를 내렸다.
그리고 각 그룹에게 일할 사람을 뽑는 업무를 맡겼다. 좋은 평가를 받아 자존감이 높아진 참가자들은 소수민족 출신의 지원자를 차별하지 않고 공정하게 평가하였다. 그러나 나쁜 평가를 받아 자존감이 낮아진 참가자들은 소수민족 출신의 지원자를 차별하여 혹독한 평가를 내렸으나 자신과 비슷한 부류의 지원자에게는 후한 평가를 내렸다.
또한, 이 실험에서는 나쁜 평가로 자존감이 떨어진 참가자들이 소수민족 출신의 지원자를 차별하는 혹독한 평가를 내린 후에 자존감에 어떤 변동이 있는지를 알아보았다. 이를 위해 두 번에 걸친 자존감 측정 문항을 통해 참가자들의 자존감을 측정하였는데, 그 결과 처음에 낮게 측정된 자존감이 소수민족 출신 지원자에게 혹독한 평가를 내린 뒤에는 원래의 수준으로 돌아와 있었다.
사회생활을 어느 정도 해본 사람이라면 사람과의 관계와 그 관계 속에서 나오는 말의 저변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면접갑질을 당한 피해자들 역시 가해자들의 말 속에 섞여 있는 진의를 느낀다. 말 그대로 면접은 "우리 회사에 적합 인재를 발굴"하는 과정인데, 그 과정과 무관한 말·행동·태도 등이 섞여 있다면 당연히 눈치 챌 수 밖에 없다.(피면접자가 마냥 어리기 때문에 눈치채지 못할 것이라는 착각하지 마라)
수요독점적 시장인 노동시장 속에서, 특히 누구나 들어오고 싶어하는 대기업의 경우 구직자의 힘보다는 구인자의 힘이 더 강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구조는 평범한 사람에게 면접위원으로서 자그마한 권력을 쥐어준다. 그 권력을 가지고 자신의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하는데 사용할 것인지 혹은 권력의 유혹을 억제하고 공정하고 형평성 있게 면접에 임할 것인지는 개인의 자질에 달려있다.
2. 집단적 원인 : 내집단 편애주의
미국의 심리학자 네하마하잔(Neha Mahajan)은 무리 생활을 하는 원숭이를 상대로 실험을 진행하였다. 원숭이는 혐오하는 대상을 더 오래 노려보는 특징이 있는데, 이 실험은 원숭이의 그러한 특성을 이용하였다. 실험은 원숭이에게 다른 무리의 원숭이 사진과 자신이 속한 무리의 원숭이 사진을 각각 보여 주었다. 역시나 원숭이들은 다른 집단 원숭이들을 순식간에 알아보고 그 사진을 더 오래 노려보았다.
또한 원숭이들은 일관된 것들이 나열될 때에는 금세 흥미를 잃고, 비일관적이며 상충되는 것을 나열했을 때에 더 오래 흥미를 느끼는 특징이 있다. 이런 점을 이용해 후속 실험에서는 자기 집단에 속한 원숭이들의 사진과 자기가 좋아하는 사물의 사진(과일, 음식 등) 및 싫어하는 사물의 사진(거미, 벌레 등)을 번갈아 보여 주었다. 그 결과 ⓐ자기 집단 원숭이들의 사진과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의 사진을 보여주었을 때와다른 집단 원숭이들의 사진과 싫어하는 것들의 사진을 보여주었을 때 금세 흥미를 잃었다.
반면에 ⓑ자기 집단 원숭이의 사진과 싫어하는 것들의 사진을 함께 보여주거나 다른 집단 원숭이의 사진과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의 사진을 함께 보여주면 더 오래 흥미를 느끼며 사진을 쳐다보았다. 즉, 원숭이들은 자기 집단과 관련하여 긍정적인 이미지를, 다른 집단과 관련해서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연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숭이와 같이 우리 인간도 본능적으로 자신이 속한 집단을 편애하고 그 외 다른 집단을 차별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것은 한정된 자원이라는 제약조건 속에서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나무에 매달아 놓고 가죽을 벗기는 잔혹한 행위를 미국에서는 "린칭(Lynching)"이라고 한다. 린칭은 증오 범죄로, 백인우월주의 집단(KKK단 등)이 흑인들을 죽일 때 많이 썼던 방법이다. 미국 남부 지방의 재정 상태와 흑인에 대한 린칭 횟수를 분석한 결과 목화 가격이 떨어져 미국 남부의 경제가 어려워지면 린칭의 횟수는 올라갔다. 이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캐나다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경제가 어려울수록 이민자에 대한 반감이 더 높아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즉, 우리도 원숭이와 다를 바 없이 타고난 본성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다. 타고난 본성이 그러함에도 이를 조직적으로 부추기는 문화('우린 우월해!', '우린 가족이야!', '형님아! 아우야!')가 있다면 어떨까? 아마 그 조직은 다른 집단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는 자리에서 또 그 집단의 사람이 상대적으로 약한 위치에 있을 때 가지고 있는 적개심을 분출할 가능성이 높다. 바로 채용 면접 상황처럼 말이다.
※ 이 글을 LG그룹, LX그룹 인사부서에서 읽고 있다면 계열사 및 팀별 조직문화 유형 검사를 해보는 것을 권장한다.
Ⅲ. 채용 갑질 대처
1. 구직자측 대응 방안
우선, 채용 면접에서 불쾌한 경험을 하였다면 그 수위에 따라 ①법적 절차를 진행할 것인지 혹은 ②정부부처나 공공기관에 진정(신고)를 넣을 것인지, ③언론에 제보할 것인지를 결정하여야 한다.
법적인 절차로 고려할 수 있는 것은 형사소송과 민사소송이다. 이 둘을 진행하기 위해서 면접 당시를 객관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 증빙이 필요한데, 가장 좋은 것은 음성 녹취이다. 증빙이 준비되었다면 형사소송으로는 ⅰ)모욕죄와 ⅱ)명예훼손죄의 책임을, 민사소송으로는 정신적 손해배상(위자료)을 청구할 수 있다. 실제 연봉협상에 실패하여 채용이 취소된 사례에서 법원은 취소 이후에 구직자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위자료 청구를 인용한 바 있다.(수원지법 2008. 1. 10. 2007가단49744)
법적 절차는 면접 갑질을 행한 가해자 개인에 대한 조치로 끝날 수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회사를 상대로 시정조치를 원한다면 정부부처나 공공기관에 진정(신고)을 접수하는 것도 방법이다. 구체적으로 ⅰ)고용노동부와 ⅱ)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는 것이다. 고용노동부 진정은 그 내용에 따라 ⓐ채용절차법 위반과 ⓑ직장 내 성희롱을 이유로 넣을 수 있다. 인권위원회 진정은 면접장에서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지역, 출신국가, 출신민족, 용모 등 신체조건, 정치적 의견, 학력, 가족 상황, 혼인 여부 등 다양한 사유에 근거하여 차별행위(또는 인권침해)가 존재하는 경우 신청할 수 있다. 고용노동부 및 인권위원회 모두 인터넷으로 진정 접수가 가능하다.
사안이 심각하다면 언론에 제보하는 것도 방법이다. 언론제보는 생각보다 쉬운데 관련 증빙이 있다면 이를 근거로 제보하면 된다. 제보방법은 해당 언론사 사이트 내 제보받는 연락처가 있는데, 그 곳에 문의하여 담당 기자를 배정받으면 된다. 그 이후로는 기자가 알아서 해줄 것이니 달라고 하는 자료만 잘 준비해서 넘겨주면 된다.
2. 구인자측 예방 및 대응 방안
만약 우리 회사에서 채용 갑질이 일어났다면 이는 채용부서 및 담당자의 책임이다. 임원채용 면접을 제외하고 일반공채·경력직 면접장에는 반드시 채용 담당자가 함께해야 하며, 향후 면접과정 중에 법적 이슈를 제기하는 지원자가 있을 수 있으니 전 과정을 지원자 동의 하에 녹화 및 녹취하여야 한다.
채용 담당자는 면접 과정 중 면접위원의 선을 넘는 발언, 직무와 무관한 질문 등을 인지할 경우 그 즉시 저지하여야 하며, 그 내용을 면접위원의 인사고과에 반영되게 하거나 인사위원회에 회부될 수 있도록 조치하여야 한다. 또한 면접위원들의 개인적 자질을 높일 수 있는 교육을 면접 전날에 시행해 면접장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사고를 사전에 예방하여야 한다.
이렇게 하였음에도 불가피하게 구직자에게 무례를 저지른 경우 진정성 있게 사과하여야 하며, 필요하다면 갑질의 가해자가 직접 사과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참고문헌]
1. 박귀현, 「집단의 힘」, 심심, e-book, 23.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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