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직장 생활에서 가장 힘든 것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직장인 1,049명을 대상으로 '직장생활에 지칠 때'를 주제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 대다수(89.2%)는 실제로 '직장생활 중 버티기 힘들다고 느낄 때가 있었다'고 답했고, 가장 버티기 힘들다고 느끼는 부분으로는 '인간관계 스트레스'(22.3%)라고 응답했다.
사람들은 업무를 통해 돈을 버는 것을 목적으로 직장에 다닌다.(물론, 돈이 목적이 아니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들 역시 돈을 받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그렇다면 직장 내 스트레스는 당연히 업무적인 영역 혹은 급여 수준에 대한 불만족에서 주로 기인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다수의 사람들과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 생활 중 가장 어렵고 힘든 것은 대부분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이는 우리가 사회적 관계를 지향하는 '인간'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우리는 예로부터 수렵·채집 생활을 하며 일개 조직을 이루며 살았고, 그 안에서 서로의 생존을 위해 협력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자연히 조직 내 규칙이 생성되고, 이러한 규칙을 어긴 구성원에 대한 추방은 사실상 '사형선고'나 다름 없었을 것이다.
사회적 추방에 대한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아주 약한 수준의 냉대와 무시만으로도 고통을 야기할 수 있다. 특히, 가족이나 친지들로부터 추방당한 경험을 하고 나면 참여자들은 귀속감, 자기 통제감, 자존감 등의 하락을 보였다. 반대로 사회적으로 연결되었을때 우리는 뇌에서 옥시토신을 분비한다. 옥시토신은 나 자신보다 공동체와 구성원들의 이익을 앞세우도록 해줄 뿐 아니라, 만약 필요하다면 다른 이들로부터 우리 집단을 보호하도록 이끌어준다. 2015년 수행된 한 연구에 따르면 옥시토닌을 투여한 실험 참가자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소속 집단 구성원의 실수를 너그럽게 용납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사회적 관계, 즉 인간관계는 우리에게 상당히 거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세한 변화에도 엄청난 즐거움이나 상처로 남을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돈이나 업무 강도 보다도 인간관계에 더 신경쓰게 되는 것이다.
Ⅱ. 인간관계 스트레스의 원인 : '눈치'
1. "눈치보는 행위"와 신체의 물리적 변화
우리는 인간관계로부터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 이유는 집단으로부터 추방 당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주변 동료들과 상사들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아까 나한테 살짝 찡그린 이유는 뭘까..' , '아까 농담으로 했던 말이 혹시 불쾌하게 느껴졌을까?', '왜 그런 식으로 말한 걸까?' 우리 뇌는 끊임없이 상대방을 생각하고 그들의 진심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계속해서 비상 사이렌을 울려댄다. 그러는 과정에서 당신은 계속 지쳐갈 것이다.
이렇게 "눈치 보는 행위"는 사회생활에서 필요한 행위이긴 하나, 그것이 과도할 경우 본인뿐만 아니라 집단 전체에도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솔로몬 애쉬(Solomon Asch)는 재밌는 사회 실험을 실시하였는데, 123명의 대학생들에게 2장의 카드를 보여주었다. 한 카드(카드ⓐ)에는 '선(Line)' 하나가 있고, 다른 하나(카드ⓑ)에는 각각 A, B, C 라고 명명된 3가지 선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곤 실험에 참가한 자들에게 카드 ⓐ에 그려진 선이 카드ⓑ에 그려진 A, B, C 선 중 무엇과 가장 동일·유사한지 물었다. 누가보더라도 정답은 B였으나, 실험에 참가한 피험자 외에 가짜 실험 참가자들에게는 A가 정답이라고 말하도록 지시했다.
실험결과 123명 중 3분의 2가 적어도 한번 정도는 다수의 의견에 따라 잘못된 답을 내놓았다. 물론 일부 피험자들은 다수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신이 눈으로 본 내용을 고수하였지만, 본인이 오답을 말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잘못된 답을 이야기한 경우 역시 약 37%에 달했다. 이 실험에서 더 재밌는 발견은 다수에 굴복한 피실험자들은 자신들이 집단 압력에 순응하고 있다는 사실을 과소평가하고 있었으며, 일부는 아예 인지적 왜곡 현상(진짜 B가 정답이라고 보임)까지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은 그레고리 번스(Gregory Berns)가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unctional magnetic resonance imaging, fMRI)를 통해 집단 의견에 순응한 사람들의 뇌를 분석하면서 추가로 논의되기 시작했는데, 실제 집단 압력에 순응한 사람들은 뇌의 시각 시스템에 물리적인 변화가 관측되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통제된 환각(Controlled hallucination)'이라 부르는 착시현상이라고 명명하기도 하였다. 즉, 우리는 외톨이가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자기 눈으로 볼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마저 믿지 않을 정도로 사회적인 동물인 것이다.
사람들이 다른 이의 선택을 볼 수 있을 때, 그래서 다른 사람의 선택을 보고 흉내 낼 수 있을 때, 집단 지성은 순식간에 '집단 무지성'으로 전락하고 만다.
- 토드 로즈(Todd Rose) -
2. "눈치보는 행위"와 주관의 왜곡
2016년, 연구자들은 피실험자에게 150개의 각기 다른 음식 사진을 보여주면서 뇌에 어떤 반응이 나타나는지 fMRI를 통해 확인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음식은 브로콜리, 콜라, 사탕 등 매우 다양하였다. 피실험자들은 이런 이미지를 보는 즉시 그 음식에 대한 호감을 1에서 8까지 숫자로 불러야 했다, 그렇게 항목에 점수를 매기고 난 후 피실험자들은 그들보다 앞서 2백 명의 피실험자가 매긴 점수(평균 점수)를 보는 과정을 거쳤다. 이후 피실험자들은 다시 한 번 음식에 대한 평가 시간을 가졌다.
다들 예상한 바와 같이 두 번째 평가 과정에서 피실험자들은 본래 가지고 있던 음식에 대한 선호를 집단의 평균과 가까운 방향으로 끌고 가는 순응 편향성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피실험자에게 나타난 2백 명의 평균점수 데이터도 연구자들이 임의로 설정한 값에 불과하였음에도 이러한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한편, fMRI를 통해 피실험자들이 결정을 내리는 과정을 촬영한 결과는 더 충격적이다. 처음에는 건강한 음식인지를 판단하는 뇌의 영역이 활성화되었던 반면 두 번째 실험부터는 사회적 관계와 선호도를 판단하는 뇌의 영역이 활성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타인 혹은 집단과 함께하고자 하는 본성이 깊게 뿌리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Ⅲ. 비정상적인 집단이지만 미움받는 것은 두려워..!
2022년 국내 중견 철강 회사인 세아베스틸에서 근무하던 36살 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와 관련해 최근 대법원은 가해자의 해고가 무효라고 판단했다. 법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이 사건을 판결한 법원을 탓하고 싶진 않다. 그러나 이 사건을 인지하였음에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회사는 분명 문제라고 생각한다.
고인은 유서에 직장 내 성희롱과 성추행, 괴롭힘 사실을 기재하였고, 회사의 조사 결과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대표적으로 문신 검사를 핑계로 옷을 다 벗게하거나, 부서 야유회에서 피해자의 나체 사진을 찍어 컴퓨터 파일로 저장한 뒤 A4용지로 복사해 배포하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고인을 "고문"하였다. 뿐만 아니라 가해자는 수시로 고인의 성기를 만지거나 볼에 뽀뽀를 했고, 고인이 '기분이 나쁘다'고 표현하였지만 묵살당했다. 고인의 유서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
OOO가 입사한 달(2012년 4월) 문신이 있냐고 물어봤다. 팬티만 입게 한 뒤 몸을 훑어보고 여러 사람 보는 앞에서 수치심을 줬다. 찍히기 싫어서 이야기 못 했다. 한이 맺히고 가슴 아프다.
왜 고인을 비롯한 이 사건의 피해자는 이 문제가 결코 정상적인 범주를 아득히 벗어난 것을 알고 있음에도 가해자들에게 반항할 수 없었을까? 바로 "찍히기 싫어서"다. '조직에 적응하지 못하는 놈'으로 낙인 찍힐까봐 또는 '회사 생활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상황이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집단으로부터 버려질까 애써 웃고 있었던 것이다.
집단으로부터 버려지는 것에 대해 인간이 느끼는 두려움을 연구한 사이버볼 실험이 있다. 사이버볼은 사회적 배제 실험 연구에서 자주 사용되는 소프트웨어로, 세 명이 서로 공을 주고받는 컴퓨터 게임이다. 실제로는 셋 중 둘은 인간이 아니라 프로그램이고 한 명만 실제 연구 참여자다. 하지만 연구 참여자는 이 사실을 모른 채 옆방에 다른 두 명의 참여자가 더 있다는 설명을 듣고 게임에 참여한다. 게임이 시작되면 피실험자는 처음 시작할 때만 공을 두 번 받고, 이후부터는 공을 받지 못한 채 다른 두 명이 서로 공을 주고받는 것을 지켜보기만 한다. 피실험자는 이런 인위적인 상황에서 2~3분 정도의 따돌림을 경험한 것만으로도 슬픔이나 분노 같은 강력한 부정적 감정이 발생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심지어 사이버볼에 참여한 사람이 모두 인종차별주의자(예를 들어 KKK단과 같은)들과 같이 비정상적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피실험자에게 알려주었음에도 피실험자들은 공 놀이에서 배제 당했을 때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피실험자들 입장에서 보면 그런 인종차별주의자들로부터 따돌림을 받는 건 그리 기분 나쁜 일이 아니여야 할 텐데 실제로는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니 황당하지 않은가?
인간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보다 자신을 경멸하는 사람에게 더 신경 쓴다
-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 -
Ⅳ. 나답게 사는 것
[이영지 2023 MAMA AWARDS 오프닝 발언]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쥐고 서보는 게 제 오랜 꿈이였어요. 사실 별 다른 목적은 없었고, 그냥 즐기면서 하다보니까 이렇게 마마 무대까지 가능해지더라구요."
"근데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꾸만 묻습니다. 왜 그렇게 별 났는지, 왜 그렇게 생겼는지, 또 그렇게 애매한 재능으로 뭔가를 자꾸 이뤄내고 있는지.. 글쎄요? 왜는 없었구요. 나는 그저 모든 과정에서 나였습니다. 어쩌면 내가 나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 아닐까요?"
2023년 MAMA 어워드에서 이영지라는 가수가 노래하기 전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영상을 우연히 보았다. 이 영상 통해 이영지라는 사람을 다시 보게 되었다. 타인의 눈과 입을 통해 스스로를 찰흙처럼 이렇게 저렇게 조물거리는 일반적인 사람들과 달리 스스로의 내면적 가치를 지키고 세상을 향해 이를 인정하라고 외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였다.
집단에 소속된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 너무 취약하다. 심지어 단 한 사람이 나를 싫어하거나 불편해하면 마치 다른 사람들도 나를 싫어하게 될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이곤 한다. 이런 불안감은 점차 커져 나 스스로가 사실 잘못된 사람이 아닌가하는 의심을 키우게 된다. 이는 곧 잘못된 행동과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을 키운다.
이러한 문제는 우리가 우리를 싫어하고 우리와 맞지 않는 사람들에게 집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의심하고 부정하는 사고와 행위는 스스로에게 상당한 스트레스를 안겨 준다. 대신에 우리를 사랑하고 우호적인 사람들에게 집중해보자.
그들은 당신과 나의 현재 모습을 보고 좋아해준다. 당신과 나 다운 것을 사랑한다. 그렇다면 구태여 우리가 불편하고 적대적인 옷을 입기위해 우리의 몸과 마음을 조정하거나 아프게 할 필요가 있을까? 물론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인간관계도 훈련이라고 생각한다. 반복적인 훈련은 변화를 가져온다.
지금 생각하는 그 사람에게 멀어져라. 그 사람을 더 이상 생각하지 말아라. 그리고 스스로의 내면적 가치를 공고히 하자. 당신이 생각하는 길이 옳바른 길이다. 설령 그것이 틀렸다고 해도,,
[참고문헌]
1. 잡코리아, "회사다니면서 제일힘든게 뭔지 말해주세요!"
- https://www.jobkorea.co.kr/User/Qstn/AnswerWrite?qstnNo=122102
2. 김수근·손하늘·김지인, [단독] "옷 벗겨 문신 검사"‥6년차 36살 노동자의 유서
- https://imnews.imbc.com/replay/2022/nwdesk/article/6335697_35744.html
3. 김정우, 공 주고받기 실험, 사회적 배제 경험을 해보니
-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64432
4. 황혜지, 이영지 "왜 그렇게 애매한 재능으로 이뤄냈냐고…어쩌면 나였기에"(MAMA AWARDS)
- https://m.news.nate.com/view/20231128n30605
5. 토드 로즈(노정태 번역), 집단착각, 21세기 북스,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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